어노인팅 | ANO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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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나의 작사 일지,
박기범

20년이 넘게 어노인팅에서 사역하며 모든 앨범의 프로듀싱을 하다 보니, 앨범을 기획하며 작사, 작곡에 참여한 곡이 놀랍게도 30곡이 넘는다.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악기도 잘 다룰 줄 모르는데 곡을 썼다고 말하는 게 몹시도 쑥스러워서 그다지 누구에게 말하지 않는 편이지만 ‘나 치고는 대단해’하며 스스로 뿌듯해하기는 하는 편이다. 워낙 성격이 삐딱하고 평범한 걸 싫어해서 잘 알려진 곡이 많지는 않지만, 어노인팅 예배곡들 중에는 ‘주의 인자하신’, ‘주께서 내 맘에 두신 기쁨은’, ‘사랑이 나를 부르네’ 정도가 그래도 좀 알려진 곡들이 아닐까. 30여 곡 중에 작곡을 한 건 3분의 1 정도, 음악을 만들기보다는 가사 만들기를 좋아하고 내 능력이 안되면 멤버들에게 곡을 붙여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사 만들기에 대한 글을 요청받았을 때 ‘안될 것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작곡을 하는 것에 비해 작사는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나만의 독특한 성격과 자라온 배경이 많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나를 돌아보며 정리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이런 자유로운 형식으로 주절주절 적어보려 한다. 아무쪼록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시작 - 굳이 노래를 만들어야 할 이유

나는 왜 작사를 하기 시작했나...를 돌아보면, 표면적인 이유는 ‘프로듀서로서의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나의 예배 실황을 앨범에 담아내는 어노인팅 정규앨범은 전체 선곡 리스트의 흐름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주제를 담아내기 위해 선곡된 곡들을 전체 흐름에 배치하다 보면 완성되기 전까지는 이곳저곳이 빈칸으로 남아있게 된다. 예배인도자들과 선곡하는 동안 풀리지 않는 흐름에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다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그 흐름에 어울릴만한 가사를 적어본 게 나의 가사 만들기의 시작이었다.

이런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어.

음악적 분위기가 필요하거나 어떤 특정한 메시지가 필요한데 기존에 나온 곡에서는 알맞은 곡을 찾기 어려울 때... 나에게 있어 작사의 대부분은 이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예배곡은 회중들과 함께 부를 노래이기 때문에 나 개인의 음악과 감성을 담은 ‘나의 노래’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이 예배에 어떤 곡이 들어가면 예배자들이 노래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 글을 쓸 때도 그랬듯이) ‘마감은 최고의 동기부여다’라는 말에 매우 동의하는 편이다. 작사를 하든 작곡을 하든 중요한 것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고, 얼마나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닐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강력한 동기부여는 사람을 지구 반대편 선교지에 날아가게 하기도 하고, 편안한 환경을 버리고 불편함에 뛰어들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어떻게든 예배자들을 위한 곡을 완성시키기도 하고 말이다. 당신에게 반드시 노래로 만들기 원하는 고유한 하나님의 성품이 마음에 품어져 있는가. 그 뜨거운 열정이 마침내 그 마음을 노래로 세상에 탄생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2010년 어노인팅 9집을 준비하던 중, 예배의 오프닝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준비하던 우리 모두는 깊은 고민 속에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 당시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암울한 상황이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데 사회 분위기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도저히 아무 일 없다는 듯 ‘주님을 기뻐 찬양합니다’라고 노래할 수는 없었다. 그런 절망스러운 마음속에서 -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 속에 우리 하나님이 계시니 할렐루야 노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마음이 품어졌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할렐루야...’ 어노인팅 9집 첫 곡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어노인팅 9집]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박기범 사/이지음 곡) 송 스토리 중

논리 - 예배에 마음을 싣는 편안한 길

이것도 오롯이 나 개인의 성향일지 모르겠다. 가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어떤 노래이든지 가사에 있어서 ‘논리의 전개’가 매우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스토리텔링의 경우라면 '개연성'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특별히 예배곡이라면 다수의 예배자들이 함께 노래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시에 논리적으로 편안하게 납득되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모두의 마음도 주를 향해 평탄하게 나아가리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예수 피를 힘입어’나 ‘모든 상황 속에서’ 같은 예배곡은 벌스 - 프리코러스 - 코러스 - 브릿지 등의 전개가 논리적으로 우리를 매끄럽게 인도하는 좋은 가사의 흐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리듬 - 패턴과 라임

가사를 적을 때 음절의 리듬을 같이 고려하면 곡을 붙일 때 덜 수고롭고, 작사할 때 원했던 리듬감을 작곡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음절의 리듬은 우리가 잘 알 듯이 3-4-3-4 또는 3-2-5-3 등 가사가 어떤 패턴을 갖고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 산문처럼 음절이 흩어져있는 가사로도 아주 놀라운 곡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지만, (이과 출신의) 나 같은 경우는 철저히 음절을 맞추는 패턴으로 가사를 적는 방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여기서 패턴이라 함은 처음 떠오른 한두 줄의 가사를 기준이 되는 음절 패턴으로 삼아, 다음 가사에 그것을 반복하는 걸 말한다. 나는 먼저 적어놓은 하나의 패턴을 두고 그 리듬감을 지키면서 단어(또는 표현)를 바꾸어가며 가사를 완성해 가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주의 인자하신’이란 곡에서 가장 먼저 적은 첫 줄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내 생명보다 나으며’ 가 이 곡의 벌스에서의 기본 패턴이 되었다. 시편 말씀에서 익숙한 표현인 이 첫 줄의 가사를 1-4-4-5-3의 리듬 패턴으로 삼아 다음 구절들을 만들어 갔다.

[... 한] - [... 이(가)] - [... 보다] - [... 하고] 기본 패턴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내 생명보다 나으며
위로하시는 주 손길은 내 눈물보다 귀하다
변함이 없는 주 임재가 내 근심보다 가깝고
주님 흘리신 그 보혈은 내 상처보다 진하다 [어노인팅 9집] 주의 인자하신(박기범 사/이지음 곡)

패턴에 들어갈 단어와 표현은 가능하면 다른 노래에서 찾을 수 없는 고유한 것이 되도록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기 위해 어떤 표현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휴대폰을 열어 기록해두었고, 열 개가 넘는 표현들 중에서 독특하면서도 함축적 의미를 담은 것을 골라서 가사를 완성했다. 하나의 표현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할 때도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예술적이지 못한 작사 방법이지만... 뭐 이게 내 한계인 걸 어쩌나. 이런 식으로 완성한 곡들 몇 개를 예를 들자면...

주의 사랑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주의 성실 조건에 흔들리지 않네
주의 자비 아무도 외면하지 않고
주의 긍휼 반가이 맞아주시네 [어노인팅 예배캠프 2020] 흐르네 하나님 사랑(박기범 사/곡)

사랑이 나를 부르네 날 처음 지으신 그 사랑이
조금도 바래지 않고 한 번의 후회도 없는
그 사랑이 나를 부르네

사랑이 나를 부르네 날 먼저 찾아온 그 사랑이
지금도 나를 보시며 여전히 함께 하시는
그 사랑이 나를 부르네 [어노인팅 예배캠프 2021] 사랑이 나를 부르네(박기범 사/ 정성권 곡)

리듬 패턴을 만드는 것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가사 만드는 방식은 가사의 라임을 맞추는 것이다. 탁월한 래퍼의 작사 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나름 소심하게(?) 라임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모음의 라임을 맞추는 걸 좋아한다. 1절과 2절의 반복 시 또는 한 줄의 가사에서 모음이 일치하거나 비슷하게 맞춰진다면 그것 자체로 노래하는 즐거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부르시는 음성을 따라
부으시는 은혜를 따라 [예배자의 노래 vol.1] 아버지 품 안에서 난(박기범 사/이지음 곡)

주의 완전한 사랑은 안전한 사랑 [어노인팅 예배캠프 2022(발매 예정)] 주의 완전한 사랑은(박기범 사 / 채푸른 곡)

주 계신 곳의 하루가...
물가에 심은 나무가... [어노인팅 예배캠프 2022(발매 예정)] 주님의 집에 올라가 (박기범 사 / 정성권 곡)

음악 - 그럼 작곡은?

주로 가사를 먼저 완성하고 곡을 붙이는 편인데, 나 같은 경우는 완성하고 나면 내가 곡을 붙일 수 있는 곡인지, 내가 붙일 수 없는 곡인지 쉽게 판단이 선다. 내가 할 수 없다면 다른 작곡자들에게 곡을 붙여 달라 부탁하면서 비슷한 이미지의 기존 곡을 레퍼런스로 전달하기도 한다. 회중 예배곡에 있어서 음악은 그 가사에 담긴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음악 자체에 가치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예배인도자(팀)가 예배자들의 깊은 예배를 위해 헌신하듯이, 예배곡의 음악은 그 곡에 담긴 메시지가 회중들 입술로 고백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해 헌신한다. 어노인팅의 예배곡들은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할 그릇이 되어야 하기에 장르적으로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다. 팝, 발라드, 락에서부터 레게, 시티 팝, 국악에 이르기까지 - 음악을 향한 욕심이 아니라 효과적이고 신선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예배팀의 고민과 수고 덕분이다.

가사를 완성하고 작곡을 고민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주변에 함께 고민해 줄 사람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여러 사람이 함께 예배할 노래라면 나의 작품으로 소유하기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아이디어를 모아 빚어가는 것이 더욱 공동체적이고 예배스럽다. 당신의 아름다운 작사, 작곡의 헌신을 주께서 기쁘게 받으시기를... 마음을 모아 화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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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30

글. 박기범(어노인팅 음반 프로듀서), 편집. 강은별